본문 바로가기

말씀나눔

혼탁한 사회 _ 진리 없는 교회(포스트모던, 상대주의)

이 시대는 진리에 너무도 혼탁하다.
무엇이 하나님의 진리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진리를 빙자하여 출현한 온갖 이단들,
성경적 가치관과 정면 반대하는 TV 와 유튜브 컨텐츠들,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경의 권위’를 흔들고,
성경의 말씀 위에 인간의 생각을 놓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란, 하나님과 대척점에 서 있는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신학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경건한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앞세워 인간이 진리 판단의 주체가 되어,
신학을 하는 형태가 무수히 많이 나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와 사랑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하기 힘들어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따스한 감정을 앞세워 ‘진리’ 위에 서려고 한다.
자유주의의 출발 신학자인 슐라이이허 마허가
‘감정’으로 모든 신학적 체계를 세우려고 했던 시도와 비슷하다.
마치 나의 감정이 움직이면 그것을 ‘진리’라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각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부인’이 필요한 것이다.
‘자기 부인’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회개’는 자기 부인의 시작점이다.
말씀 앞에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길을 살았는지에 대한 회고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겠다는 것이 회개이다.

그런 기독교 핵심 진리에 대해서,
성경에서 ‘죄’를 ‘죄라고’ 규정하고 설교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는가.

부모님이 자녀에게
‘담배는 위험한 것이고 피우지 말아라, 그건 절대 안된다’라고 교육할 때,
만약 자녀가 “왜 나의 인권을 침해하느냐”라고 한다면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왜 인권침해’라는 말이 나오는가.
‘인권침해’는 ‘인권’ 자체에 대한 진리가 분명하게 없고,
내가 느끼기에 불편감을 느끼 그것이 진라고 생각하는,
포스트모던의 전형적인 사고이다.

교회에서 ’죄’를 ‘죄라고’ 말하고 지적하는 설교는
앞으로 굉장히 어려워 질 것이다.
인간의 인권을 강조하면서 점점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따라 따라가는,
짐승적인 사회로 돌아갈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욕구에 따라 움직일 것이며,
자신의 욕망과 욕구가 존중 받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실.
결코 죄는 끊을 수 없다는 생각.

이것이 교회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거룩’이 무엇인지,
‘말씀’이 무엇인지, ‘이 시대의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세상의 거짓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괜찮다. 진리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에는
반드시 핍박과 박해는 준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