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쓴뿌리가 있다.
내 마음에 상처로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할 때가 있다.
그것이 가족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된다.
미워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에게 잘해주지 않아서..”
“나에게 실수를 해서..”
“나에게 무례해서..”
이러니.
내가 아무리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었다.
내 마음에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미움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 이후로부터는 달랐다.
나의 기준과 나의 생각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하시는 지가 중요했다.
예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해야했다.
그러니 내 안에 자유함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 판단은 불완전했다는 것을 깨달으니 자유해졌다.
오늘은 기도하는 데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 같았다.
“내가 과연 미워할 권한이 있는가”이다.
답은 당연히 없었다.
누군가에 대해서 죄를 심판하고 책망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
나에게 거대한 상처를 줬다고 해도,
나를 힘들게 했다고 해도,
책망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오늘 문병호 교수님이,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맡기라는 의미다. 전쟁시에 손을 들라는 것은 무방비이다.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갈게라는 의미이다.”
모세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이 나온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신3:22)
그렇게 안 믿겨지던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한다.
나의 주도권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인생을 책임지시리라 믿는다.
마태복음 6장 말씀으로 마치고자 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탁한 사회 _ 진리 없는 교회(포스트모던, 상대주의) (0) | 2020.04.16 |
---|---|
우울증에 걸릴 수 밖에 없는 세상_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라 (0) | 2020.04.16 |
세상의 환상, 세상의 율법을 넘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0) | 2020.04.15 |
십자가_따르기_ 십자가는 가까운 곳에 (0) | 2020.04.14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0) | 2020.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