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샌가 신앙을
"인간의 이성에 맞는 것",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내 생각과 부합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것은 철저한 오류였다.
하나님은 나의 친구가 아니다.
하나님은 제한적인 피조물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와 결판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시다.
하버드대 나온 사람 앞에서 위축되는 것이 인간 아닌가.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인간이다.
하물며,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누가 떳떳하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말씀은 내가 합리적으로 느껴져서 순종하는 게 아니다.
말씀은 내가 도저히 아닌 것 같은 상황에도 순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인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위 앞에 나의 생각이 굴복되어야 한다.
나의 생각이 깨져야 한다.
내가 순종하고 싶기 때문에 순종할 마음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감정과 상관없이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납득하게 하시지만,
모든 것이 납득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하면,
답답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자아를 실현하는 것. 자신의 뜻을 세우는 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도망가면 갈수록 허무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우울하다.
세상에서는 결코 안정감을 누릴 수 없다. 그곳은 상대적인 가치로 가득한 곳이며, 끊임없이 나를 비교하고 무너뜨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의 질서 안에 거할 때 가장 안전하다.
인생은 심플해진다.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들어가서 살면 된다. 너무도 편하다.
무조건 그 질서가 다 내 몸에 맞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그럴 때 평안이 온다. 세상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다.
만약 하나님께 순종할까 말까를 내가 결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에 대해서 분노하신다.
오늘 기도 중에 깨달았다.
실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니다. 결코 좋은 땅이 아니다.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좋지 않은 땅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좋은 땅이다.
나에게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복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너 이거 부족하지?"라고 답정너로 말하게 만든다.
나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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